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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음악사

더 큰 슬픔을 원할때 듣는 바흐 - bwv1004 샤콘느

by samthegreatest 2022.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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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집에서 느끼는 햇살

무기력을 넘어선 슬픔을 더 느끼고 싶을때

정말 그냥 이유 없이 슬픔을 더 느끼고자 싶을 때가 있다.
슬픔의 덫에서 빠져나와야하지만, 그냥 그 슬픔을 조금은 더 깊게 느끼고, 더 빠져들고 싶은 그런 때가 존재한다.
사실 가만히 있어도 슬플 수는 있지만,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촉진제가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빠르고 쉽게 슬퍼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개개인의 슬픔의 촉진제가 다 다르지만, 아마도 오늘 소개할 bwv.1004 의 샤콘느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선사할 수 있는 좋은 촉진제가 될수도 있을것 같다.

이자크 펄먼의 샤콘느

바흐는 피아노와 달리 단선율로 구성된 바이올린으로 캐논이나, 푸가등 대위법을 사용해서 굉장히 풍부하고 정교한 곡을 작곡했는데, 오늘 보여줄 샤콘느는 1004번 파르티타 의 마지막곡으로도 너무나 유명한곡이다. 파르티타는 일종의 변주곡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17세기 말부터 독일에서는 이 말을 모음곡의 뜻으로 사용하였고 지금 오늘날 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역시나 파르티타 대다수는 바로크 춤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이었다.
1004번의 마지막곡인 샤콘느는 눈여겨 볼만한점이 무엇이냐면, 구조적으로 굉장히 튼튼하고 충실하다. 한번에 두현을 눌러 화음을 만드는 더블 스톱 테크닉 또한 빈번히 사용해서 마치 듣다 보면 바이올린 두대가 연주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드는데, 이러한 부가적인 테크닉이 필요하기에 웬만한 전공자들도 꺼리는 곡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주제 선율이 찢어질듯이 슬프고 굉장히 엄숙하다. 이 주제를 토대로 30개의 변주가 이어지는데, 크게 세파트로 나뉘어져 있어 지루한 감 없이 끝까지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것도 이 곡의 묘미이다.
주제에 충실한 변주와, 화성의 아름다움, 그리고 모든 음악공식에 대한 증명을 통해 3파트로 나눌 수 있는 이곡을 듣다보면, 마치 바이올린을 통한 완벽한 자연의 섭리가 떨어져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어느 음 하나 어색하지 않고, 어느 박자 하나 부족하지 않은 완벽에 가까운 위대한 섭리를 알게되는듯한 느낌이다. 샤콘느가 가진 조형미와 아름다움, 견고함과 다양성, 독창성이 존재하기에 바흐의 곡중 한곡을 인류를 위해 남기라 해야한다면 이곡을 꼽지 않을까 싶다.

이자크 펄만의 샤콘느를 들어보자.
소아마비 때문에 주로 휠체어나 의자에 앉아서 연주하는 이자크 펄만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확실했고, 조금은 불편한 몸 때문에 그가 슬픈 곡조의 곡들을 연주할때면 다른 사람들이 연주하는것보다 몇배의 슬픔이 느껴진다. 그가 젊은 시절 연주한 샤콘느를 듣자면,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이 다 들리기 때문에 조금은 더 슬픈 느낌이 없지않아 든다. 특히나 6분 언저리부터 시작되는 연주에서는 선율과 선율을 엇갈리게 주고받으면서 연주되는 부분은 그가 유대인으로서 받아온 부조리와 장애인으로서 받았을 모든 슬픔이 느껴지는것 처럼 느껴진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샤콘느를 들어보자.

바흐- 부조니 샤콘느 임동혁

 

부조니에 의해 피아노로 재 해석된 샤콘느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부조니가 바흐의 샤콘느를 피아노로 편곡하였는데, 메인 주제 선율을 바탕으로 한 변주곡과 종결구로 구성이 되어있다. 주제 선율을 근거해서 a-b-a 세 파트로 나눌 수 있고, 바이올린곡과 동일하게 느린 4분의 3박자 변주형식을 띄고있다. 다른 편곡들과 다르게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원곡을 헤치지 않으려 엄청난 노력을 쏟은것이 보인다.
바이올린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움과 강렬함 대신 정교하면서도 다양한 화음을 덧입혀 듣는 사람의 감정을 더 휘몰아치게 만드는 피아노 곡은 듣는것에 집중하다보면 개인의 감수성을 최대한으로 끓어 올릴 수 있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젊은 층에서는 임동혁과, 선우예권, 그리고 손열음인데, 바로크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리는것은 임동혁같고, 백건우 선생님과, 김대진 선생님의 피아노도 굉장히 좋아한다.
어떤이는 백건우 선생님의 부조니 샤콘느가 더 좋다고 하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은 샤콘느 만큼은 백건우 선생님보다는 임동혁이 더 나은듯한 느낌이다. 백건우 선생님의 샤콘느는 맛으로 비유하자면 순한맛 느낌인데, 임동혁이 연주한 이곡은 마치 맥배스와 같은 큰 비극을 보는 듯한 서사가 느껴지게 연주하는게 들리고 보인다. 임동혁의 섬세하고 가슴아픈 샤콘느를 들어보자.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브람스 샤콘느 

브람스가 만들어낸 한손만 사용하는 피아노 샤콘느

가장 바이올린 원곡을 훼손하지 않고 지켜준 브람스의 왼손을 위한 바흐 샤콘느 또한 같이 들어보기에 좋은 곡이다.
개인적으로 이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넓은 피아노의 건반속에서 한정된 범위에서만 연주하는 답답함과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가지 않는 그 통제와 절제가 더 맘에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람스는 바흐를 굉장히 존경했고, 이곡을 편곡하고 난 다음 바흐에 대한 존경심을 많이 나타낸것으로도 알려져있다.
가장 바이올린 스러운 피아노곡이다.

슬픔속에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되면, 슬픔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쳐있어서 조금 더 슬프고 싶을때 샤콘느를 들으면 위로가 되고, 이유 없는 살아갈 이유가 생기게도 된다.
슬프면서도 섬세하고 경의롭고 완벽한 이 작품을 통해 한번쯤은 눈물을 흘려볼만 하다.
지친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곡이고, 나에게 선물하고싶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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